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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sion과 Convergence

바야흐로 퓨전(fusion)의 시대이다. 퓨전은 몇몇 멋쟁이들의 세련된 취향의 범주를 넘어 문화의 키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퓨전 음악의 등장은 전통적인 장르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들고 있고, 퓨전 메뉴는 정통 메뉴의 인기를 넘어 레스토랑의 새로운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이나 디자인 등의 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왼쪽 오른쪽으로 구분지울 수 없는 복합적인 색깔을 띠는 정치사상의 퓨전도 등장하고 있어, 이러다 보면 존 레논이 그렇게도 애잔하게 imagine 했던 무경계의 이상향이 실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성급한 희망을 갖기까지 한다. 이처럼 퓨전은 단순한 취향이나 감각의 차원을 넘어 문화와 사상의 새로운 조류로 승격되는데, 트렌드에 예민한 산업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마치 새로운 미지의 땅은 더 이상 없다는 듯이 …

기계와의 전쟁

CD는 구경도 못했고, CT(Cassette Tape)도 흔하지 않던 시절, 허접한 CT 레코더로 밤을 세워가며 라디오 음악방송을 녹음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형편으로는 공 테이프를 사기가 부담스러워 방에서 굴러다니는, 주로 부모님이 듣던 가요테이프를 슬쩍 이용했는데, 어떤 CT는 아무리 녹음버튼을 눌러도 요지부동이어서 혼자 열 받아 씩씩거리곤 하였다. 공 테이프를 몇 번 사봤으면 알 수 있었겠지만 당시로는 CT의 한구석에 있는 탭을 부러뜨리면 녹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지금 생각해도 왜 굳이 탭을 부러뜨리도록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슬라이드로 구멍을 막았다 열었다 하면 될 것을. 혹시 나 같은 무지한 소비자들로 하여금 계속 새 제품을 구입하게 하려 했던 음모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끈질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