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15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있었던 CC 글로벌 써밋 첫날 Lawrence Lessig 교수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원래 레식 교수는 참석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죠. 꼭 있어야 할 사람이었지만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그로써는 선거운동이 한창인 시기에 컨퍼런스에 참여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행사가 시작되기 3일 전에 저한테만 살짝 연락이 왔습니다. 오겠다고 하더군요. 행사 날 당일 새벽에 도착해서 그날 오후에 돌아가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레식 교수가 오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던 터라 반가운 소식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본인이 워낙 당부한 거라서 참느라 혼났지요. 그날 새벽에 도착해서 부시시한, 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눈빛이 살아있는 그의 참석을 제 키노트 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가워했고 언제나 감동이 넘치는 그의 스피치를 들을 수 있었지요. 선거운동 기간 중에 사라진 후보는 보통 이라크 같은 데서 나타나는데 자기는 여기 왔다고 농담을 하더군요. 오전 키노트가 끝난 후 레식, 요하이, 그리고 CC 의 CEO 인 라이언과 함께 대담 세션을 진행했는데, 작년에 레식과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당시 레식에게 의회개혁운동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을 때 자기도 회의적이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도 왜 그 고생을 하냐고 했더니 그래도 해야 하기 때문에 한다고 대답했었습니다. 그 이야기 생각나 그에게 물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씩 웃더니 그는 자신이 점점 낙관주의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그 말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날 제 키노트의 마지막 슬라이드는 “not exhausted, not frustrated, not losing hope” 였거든요. 써밋에 참석한 각국의 CC 사람들을 비롯해서 그 자리에 온 모든 사람들, 그리고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어떤 비전을 가지던, 어떤 꿈을 꾸던, 어떤 것을 원하던, 길고 지리한 여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지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레식의 그 말이 그토록 반가웠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지요. 함께 점심을 하고 그와의 짧은 상봉을 아쉬워하며 헤어지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그에게 한번 더 하면서 힘내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씩 웃더군요.

엊그제 레식 교수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거에서 물러났습니다. 사실 그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그동안 제기해온 미국 정치의 문제점, 진정한 국민의 참여에 의한 민주주의가 아닌 소수의 재력가들과 로비에 의해 좌우되는 금권정치의 실상과 그 해결방법을 선거운동, 특히 후보들간의 토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 나가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레식 교수보다 선거자금을 모으지 못했고 지지율도 떨어진 후보를 토론회에 참여시켰음에도 레식 교수는 제외가 되었지요. 그러자 레식 캠프는 민주당에서 제시한 기준, 즉 토론일 전 6주 안(in the six weeks prior to the debate)에 민주당이 지정한 세곳의 여론조사에서 1퍼센트 이상을 얻는데 전념을 했고 결국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자 민주당은 돌연 그 기준을 바꿨습니다. 토론일로부터 6주전(at least six weeks prior to the debate)에 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으로 변경한 것입니다. 결국 레식 교수는 토론회에 나갈 수 없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계속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해서 사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말했듯이 “I may be known in tiny corners of the tubes of the internet, but I am not well known to the American public generally”의 한계가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토론회에 나가는 것이 필요했으니까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단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야 유리한 정치의 생리잖습니까. 무슨 이유로 민주당측이 저런 식의 방법으로 레식 교수를 토론회에서 배제시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레식의 도전은 그렇게 좌절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액티비스트 아론 스워츠(Aaron Swartz, 마침 이번 토요일이 그의 29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날이네요,https://www.facebook.com/events/470929913086608/) 로부터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라는 질타 아닌 질타를 받고 저작권 개혁운동에서 정치 개혁운동으로 전환하여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레식 교수와 부담 스러운 아웃 사이더를 치졸한 방법으로 배제한 기존 정치세력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답답하기 그지 없는 우리 정치를 생각하면 그나마 그렇게라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사람이 등장하는 그쪽 이야기가 부럽기도 하구요. 앞으로 그가 또 어떤 길을 밟아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진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 다시 등장할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그는 일단 귀여운 세 남매의 곁에서 간만에 달콤한 잠을 자러 갔습니다.

아래 비디오를 보시면 알겠지만 사임을 발표하는 그는 결코 지친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구요. 오히려 어느 때보다 힘이 있어 보이네요. 점점 낙관주의자가 되고 있다는 그의 말이 다시 한 번 생각납니다. 그래요, 지치면 지는거니까.

Larry,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