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 열풍은 음악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곳곳에 숨어있던 강호의 고수들이 자신들의 무공을 뽐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불구하고 감동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가 하면 책상머리에 앉아 연주한 기타곡이 프로를 능가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몇몇 프로뮤지션들의 의심스러운 실력에 실망해서인지 몰라도, 투박하지만 진정한 라이브를 보여주는 그들에게 뜨거운 애정과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기타 연주곡 표절사건과 블로그스피어의 불펌 소동

몇 달 전 어느 유저가 인터넷에 올린 Last Christmas를 아름다운 기타 연주로 감상한 적이 있다. 아른한 조명 아래 인물 좋은 청년이 그 분위기에 딱 들어맞는 곡을 전자기타로 연주하는 동영상이었는데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그 연주 실력이 상당하였다. 여유 있는 손놀림과 물결을 타는 듯한 리듬감은 아마추어로서는 믿기지 않는 실력이었는데 워낙 세련된 연주여서 감탄을 넘어 시샘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감상하려고 찾아 가보니 파일이 삭제되고 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파일을 내렸나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검색을 해서 다른 사이트로 찾아 가보니, 웬걸 달린 댓글들이 심상치가 않다. 내용인 즉 그 연주가 전부 가짜였다는 것이다. 일본의 모 프로뮤지션의 곡을 틀고 흉내만 냈다는 것인데 한바탕 소동 끝에 당사자가 사과하고 파일을 내렸다고 한다. 직접 확인하지 못해 진상이 과연 무엇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러모로 보아 괜한 음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부랴부랴 원곡을 찾아서 들어보니 결론은 동일한 사람의 연주이던가 아니면 정말 기가 막힌 카피연주 둘 중의 하나인데 의심스러운 쪽으로 더 기운다. 며칠 전의 그 감동은 사랑했던 연인에게 배신당한 고통과 같은 허탈한 서글픔으로 바뀌고 말았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그 덕분에 모르던 음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와 비슷한 시기에 블로그스피어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있었는데 타인의 블로그에 게시된 글의 일부를 모 포털에 있는 자신의 블로그에 원저작자를 표시하지 않은 채 포스팅한 사건이다. 비록 원 게시물에 CCL(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이 적용되어 있어 라이선스 조건만 준수하면 자유롭게 복사하여 갈 수 있었지만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라는 라이선스 조건에 위배되었기 때문에 저작권을 침해한 결과가 된 것이다. 고의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가뜩이나 블로그 게시물에 대한 이른바 ‘불펌’이 이미 예민한 이슈였고 공교롭게도 무단으로 포스팅한 그 글이 뜨는 이야기로 선정되어 포털의 블로그 메인 화면에 올라가기까지 하는 바람에 그 파장이 적지 않았다.

위 두 가지 소동은 결코 보기 드문 케이스는 아니다. 이른바 ‘불펌’의 역사는 인터넷 역사만큼 오래되었고 비록 예전보다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일반인들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나 거짓에 대한 죄책감은 여전히 미흡하다. 두 번째 사건이 전형적인 저작권침해의 예라고 한다면, 첫 번째 케이스는 조금 다른 경우이다. 원곡을 그대로 갖다 쓴 것이라면 원곡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굳이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그것보다는 남의 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실력을 가장한 것이 이 사안의 핵심이다(물론 그 댓글의 내용이 사실임을 전제로 할 경우이다). 그것으로 금전적 이익을 취득한 것은 아니니 형법상의 사기죄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기망행위로 모든 이들을 속였다는 점에서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학술, 예술 분야에서 남의 것을 도용하여 자기 것처럼 가장하는 것을 넓게 표절이라 부른다. 표절의 범위는 상당히 넓어서 고의에 의한 확실한 저작권침해에 해당하는 것부터 다른 이의 아이디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어 표현한 경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타인의 저작물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착각해서 결과적으로 표절이 되어버린 경우 등 그 목적이나 정도에 있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학술,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심심치 않게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명 모 교수가 시집을 내면서 제자의 시를 도용했다가 이를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발생하기도 하였으니 이처럼 표절의 뿌리는 깊기만 하다.

그러면 위 두 사안에서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언뜻 살펴보건대 그러한 표절이나 기망행위로 금전적 이득을 얻으려고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연구 논문을 채우기 위한 절박한 심정에서 한 것도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럼 장난?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보다는 문득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강박관념이 떠오른다.

 

UCC와 신데렐라 환상

‘1인’ 미디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블로그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의 등장은 조직이나 대중에 파묻히지 않는 개개인의 아이덴티티를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었다. 기술의 발전은 대중에게 창작의 수단과 기회를 부여하였고, 네트워크는 이를 발견하고 배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으며, 검색기술은 수많은 후보자들로부터 진주를 찾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실현시켜 줌으로써 소수의 권력이나 조직에 의한 선별이 아닌 그야말로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질서에 의해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뜨고 있다. 그래서 그 개개인의 이름이 기업이나 단체의 브랜드에 버금가는 가치를 갖게 될 수도 있는데 이를 보통 개인브랜드(personal brand)라고 부른다.

개인브랜드는 온라인에 한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오프라인 비즈니스나 사회 일반에서도 찾아 볼 수 있고 그 필요성이나 유용성도 널리 인정받고 있지만, web2.0이 득세하고 롱테일 이론이 각광을 받으면서 더욱더 주목받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개인브랜드를 높이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며 성공적인 사례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인브랜드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 왜곡된 결과를 낳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다양한 사정이 있겠지만 방문자 수에 너무 연연하는 일부 블로거들의 모습도 그렇거니와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엉터리 콘텐츠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과도한 오버를 하는 것도 보는 사람을 씁쓸하게 만드는 광경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른바 ‘대박문화’에 의해 더욱더 부채질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롱테일을 부르짖는 지금의 인터넷 문화의 키워드 중 하나는 오히려 전통적인 큰머리 시장의 히트상품이 상징하는 ‘대박’이다. 새로운 사업모델로 인터넷 비즈니스시장에 뛰어든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는 구글이나 유튜브와 같은 대박의 신화가 자리 잡고 있고, 상당수의 유저들은 기성의 프로 못지않은 수익이나 하루아침에 프로시장의 스타가 되려는 대박을 꿈꾸면서 UCC를 만들고 있으며 업계는 이를 부추키면서 신데렐라의 환상을 심어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대박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고 지금의 인터넷 문화가 새로운 스타들을 탄생시킨 것도 사실이지만 뜨는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이 자유스러운 이상계를 또 하나의 갑갑한 현실계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러다 결국 앞서 본바와 같은 무리수도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와 함께 개인브랜드의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검증의 미흡이다. 현실계에서 성취된 개인브랜드의 경우 물론 아닌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 현실에서의 실적이나 경쟁 또는 시험 등의 테스트를 거치는 과정에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고 브랜드로서의 위치를 공고하게 한다. 이에 반해 이상계에서 형성된 개인브랜드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적고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유리한 다양한 미디어 수단을 이용하기 때문에 과연 그것이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장과 과장을 통해 만들어진 허상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의 글을 절묘하게 표절하고, 다른 사람의 연주를 자신의 것인 양 가장하는 모두가 검증이 요구되지 않고 당장 실제로 검증받을 일도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이루어진다. 그 허상에 의해 만들어진 브랜드가 일단 공고히만 되면 그 후의 문제는 다 해결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니, 본인은 자신의 브랜드가 허상인지 인식 못할 수도 있다. 자기가 무지 잘하는 줄 알았는데 시합에 나가서 붙어보니 날고 기는 놈이 한둘이 아니더라는 운동선수의 푸념과 같은 맥락이다.

 

개인브랜드의 가치

공자 말씀일지도 모르지만 이상계를 통한 개인브랜드의 성취는 결코 집착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취를 위한 노력과 성취에 대한 집착은 엄연히 다르다. 이상계를 진정한 기회와 성취의 땅으로 만들고 싶다면 우선 즐겨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상계가 제공하는 가능성의 행복을 마음껏 만끽하면서 스스로를 즐겨야 한다. 그러면서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와 실력 연마를 하는 과정에 얻어지는 것이 개인브랜드이고 자신의 가치이다. 이와 함께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이상계와 현실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브랜드를 검증해봄으로써 그 가치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고 남들에게도 진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실 조금 과장 섞어 말하면 우리나라처럼 전문가로 등극하기 쉬운 나라도 없을 것이다. 몇 번 입에 오르내리거나 눈에 띄게 되면 금방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꺼리는 우리의 정서상 제대로 된 검증을 받을 기회도 적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브랜드에 유리한 환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되는 장애이다. 이름을 얻기 시작하면 이곳저곳에서 달려들어 붙어보고 그러한 과정 끝에 살아남게 되면 비로소 전문가로서 인정되는 그런 풍토가 진정한 개인브랜드를 탄생시킬 수 있는 토양이 아닐까.

문득 드는 생각하나. 그러면 소위 전문가라고 컬럼을 쓰고 있는 나는?

…….컬럼 주제를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http://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00000039154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