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경 한 수업에서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고 싶을 정도로 내 스스로 많은 것을 느낀 대화였다. 무엇보다도 크게 느낀 것은 소통의 어려움이다. 

그날 그들에게 말해주려 했던 키워드 중 하나는 용기였다. 평소 대학생들로부터 느꼈던 아쉬움 때문이었는데, 난 요즘 대학생들이 이전과 비교해서 취업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너무 일찍부터 집착하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해타산을 따진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대들은 시간적 여유나 남아 있는 기회나 모든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아직은 충분히 실험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처럼 현실만을 따지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이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고 용기 없음은 아직 계몽되지 않은 미성숙함을 의미한다’라고 단언적으로 말했다. 물론 뻔한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그 타당성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피드백을 받았다. ‘우리가 시간이 많다고요? 우리에게 기회가 많다고요? 이런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군’이라는. 그러고는 그들로부터 전해들은 88만원 세대이야기. 또래 간의 경쟁뿐만 아니라 앞선 세대(특히 내가 속한 386세대)에 밀려 암울한 현실과 희망 없는 미래를 안고 가는 세대. 그럼에도 그 조금 남은 여지를 필사적으로 차지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헉헉거리며 살 수밖에 없는 세대. 이것이 그들이 나에게 이야기 해준 그들의 절실함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의 반론에도 할 말이 없는 바는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해 그 말을 하기 전에 그들의 현실을 전혀 ‘절실하게’ 고려한 바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른 어느 기성세대보다도 그들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들의 처지와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가장 중요한 그들의 ‘절실함’이 내게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머뭇거림 없이 자신 있게 일갈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들은 반발하고 싶은 잔소리를 다시 한 번 들은 셈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보면 나와는 다른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절실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말을 건네기가 부담스러워지는 것이고, 좋은 말로 하면 신중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법률가로서의 생래적인 조심스러움이 더해지면서 다른 이들에게 나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상대방의 입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경우는 더 하다. 이번이 그런 경우인데 정부를 포함하는 공공섹터(Public Sector)에 계신 분들이다.

공공콘텐츠의 진정한 활용을 위하여

그 동안 콘텐츠의 자유로운 활용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여왔다. 법률가로서의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법에 대한 관심은 Creative Commons를 만나면서 저작권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다양성과 개방을 추구하는 열린 문화(Open Culture)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열린 문화 내지 오픈콘텐츠에 관한 이야기는 공공콘텐츠(Public Contents), 즉 정부 등의 공공섹터 또는 정부에 의해 자금지원을 받아 만들어지는 콘텐츠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사실상 공공섹터는 콘텐츠에 대한 권리자 중 가장 규모가 큰 그룹이라 할 수 있고 그 콘텐츠의 질에 있어서도 민간 영역과 차별성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자유로운 활용은 열린 문화와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게다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에 대해서는 국민의 자유로운 접근과 활용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적인 당위론이나 그러한 보장이 민주정부의 이념에 적합하다는 이념적인 근거도 쉽게 거부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공공영역이 만들어 내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민간 영역에서 만들어 내는 콘텐츠와는 출발부터 다르다는 점, 즉 영리적 목적으로부터 자유롭고 또한 개인의 인격적 이익과도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점은 공공콘텐츠의 개방을 긍정하는 유력한 근거가 된다.

‘자유이용’에 예외적인 공공콘텐츠

그러나 이와 같은 콘텐츠의 잠재력, 자유 활용의 당연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공공콘텐츠의 자유이용 사례는 아직도 예외적이다. 사실 공공콘텐츠의 공익적인 활용에 대해서 정말 많은 말이 오고 가고 자주 정책적인 비전이 제시되며 실제 구체적인 계획을 의논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실제 성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민간 영역에서도 콘텐츠의 자유이용을 보장하는 이른 바 웹 2.0식 모델이 등장하는 판에 왜 공공영역에서는 이에 적극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을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KOCCA)은 이른바 공공문화콘텐츠 저작권위탁관리사업을 하고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그 산하기관 등의 공공영역에서 제작ㆍ보급하여 저작권을 갖고 있는 디지털 문화콘텐츠에 대해서 저작권을 위탁받아 http://Culturecontent.com 이라는 유통채널을 통해 이용허락을 해주고 로얄티를 걷어 분배해주기 위해 정교한 결제시스템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 홈페이지에는 제도의 취지를 “국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공공문화콘텐츠는 국가 문화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중요한 자원(Resource)으로써, 보존 및 관리 차원의 접근에서 공공문화콘텐츠의 적극적 활용이라는 측면으로 접근 필요”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위탁관리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유와 잘 정비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그 활용도나 실제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위 위탁관리사업은 공공영역이 처한 운신의 어려움을 시사해주는 하나의 예이다. 언제부터인가 정부 등의 공공영역에서 민간영역을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강조되고 있다. 유연성과 효율성에서 앞서가는 민간영역은 특히 정보화시대를 맞아 업그레이드가 요구되는 공공영역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고, 대통령마저 비즈니스 외교를 자청할 정도로 비즈니스 마인드는 공공영역의 운영자들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덕목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공공영역에 종사하는 담당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공콘텐츠로 추가적 재정적인 성과나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만들어 내도록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보유 콘텐츠에 대한 배타적인 관리와 직접적인 운용을 그 부서의 존재의미와 결부시켜 판단하는 과거 사례는 더욱더 운신의 폭을 좁아지게 하는 것이다.

민간영역과는 다른 철학으로 출발해야

그러나 공공영역이 민간영역을 벤치마킹하여야 한다는 의미는 유연성과 효율성 등 공공영역의 단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미이지 모든 것을 민간영역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공영역은 민간영역과 다른 기반과 철학 위에서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 할 일이 있다.

물론 공공콘텐츠의 개방도 일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도의 재가공과 집중적인 활용이 필요한 것은 상응하는 로얄티를 받고 민간기업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고, 타인의 권리가 결부되고 오도된 이용이 우려되는 분야는 신중해야 한다. 또한 모든 이의 자유로운 활용을 보장한다고 해도 아예 저작권을 포기해서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으로 넘기기 보다는 비영리 옵션이 붙은 CCL과 같은 자유라이선스를 붙여 최소한의 통제를 유지하는 것이 국민의 세금이 일부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결과를 막는데 유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공공콘텐츠의 본질과 공공영역의 역할에 대한 최우선적인 정책이 무엇이고 기본적인 활용모델이 무엇이냐이다. Becta, British Library, Department for Education and Skills, Museum Libraries and Archives Council National Archive, BBC 등 영국의 공공섹터들의 그룹인 CIE(Common Information Environment)는 그들의 콘텐츠 정책의 기본방침을 ‘그래서는 안 될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자유로운 재활용을 보장’하는 것으로 정하면서 기존의 CCL을 기본 라이선스로 채택한 바 있다.

그 채택과정에는 진지한 연구와 폭넓은 검토가 있었지만 채택된 정책은 명쾌하고 심플하기 그지없다. 공공콘텐츠의 활용, 이는 복잡한 기획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국가지식포털이 극히 저조한 이용으로 비판을 받았던 것도 시스템이 부실했기 때문이 아니라 명쾌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로 콘텐츠의 개방을 망설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도 정책결정자와 실무자의 용기의 문제일지 모른다. 전자정부 2.0, 공공콘텐츠 2.0이 단지 웹 2.0의 수사적 표현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기에 자꾸 머뭇거려짐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절실함’이 결여된 나의생각을 건네고 싶다.

http://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00000039165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