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by Chris Anderson) 서문
윤종수(Jay Yoon)
iwillbe99@gmail.com
twitter : @iwillbe99
중국의 어느 왕이 부강한 나라와 슬기로운 백성에게 필요한 지혜를 책으로 펴낼 것을 학자들에게 명하였다. 학자들은 수 년 간의 연구 끝에 이를 10권의 책으로 출간하여 왕에게 가지고 갔다. 그러자 왕은 10권은 너무 많다며 내용을 줄일 것을 명하였다. 학자들은 다시 오랜 시간을 들여 이를 1권의 책으로 압축했다. 그러나 왕은 그것도 많다며 한 문장으로 줄이도록 요구했다. 결국 학자들은 고심 끝에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 지혜를 가지고 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에 대한 탐구는 역사가 깊다. 한 문장으로 축약된 최고의 지혜에 포함될 정도로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데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공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정당하지 못한 이득이나 값어치 없는 싸구려 것들을 탓할 때 인용되거나, 쥐덫으로 유인하는 유혹적인 치즈 또는 머리가 벗겨지는 치명적인 욕심으로 비유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당하게 공짜의 덕을 보는 경우에도 약간의 민망함이나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공짜에 대한 부정적 입장은 생산에 따르는 한계비용이 거의 0으로 수렴하는 무형적 재화로서의 정보가 중심을 차지하는 지금의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인공위성사진부터 문서 작성도구, 수 기가 바이트의 저장장치,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은 백과사전, 전 세계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까지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첨단의 재화나 서비스가 특별한 대가 없이 제공되고 있음에도 공짜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다. 오히려 공짜에 대한 옹호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법적 또는 이념적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심지어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징하는 프리 소프트웨어(Free Software)나 프리 콘텐츠(Free Contents)처럼 개방적 정보재산권을 추구하는 진영도 마찬가지이다. 분명 그 핵심적 속성으로 ‘자유’와 ‘공짜’ 모두를 포함하고 있고 이름 자체에 그 두 속성을 모두 의미하는, 그래서 그 자체로는 어는 의미인지 구분할 수 없는 언어상의 결함이 오히려 득이 될 수 있었던 Fre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굳이 공짜 맥주(Free Beer)의 Free가 아닌 표현의 자유(Free Speech)의 Free라는 점을 애써 강조하면서 공감을 얻고자 했다면 과한 지적일까.
공짜에 대한 부정적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의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공짜의 가능성에 대한 강한 의심이요. 나머지 하나는 공짜의 가치에 대한 강한 의심이다.
많은 사람들은 공짜는 결코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기심이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인 한, 그리고 원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한 공짜로 제공되는 것은 반드시 공짜가 아니며 오히려공짜를 가장한 이기적인 술수라고 단정한다. 더 나아가 공짜는 가치가 없는 허접한 것이고 오히려 애꿎은 진정한 가치를 희생시키는 무책임한 시장 교란자로 간주한다. 정당한 대가의 지불만이 가치의 지속적 생산을 가져올 수 있는데 저질의 공짜가 진정한 가치의 실현을 방해하고 사장시켜 버리는 게 공짜가 초래한 악몽이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공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와 같은 의심 때문이다. 분명 예전과는 구분되는 특이한 경제현상들이 감지되고 있고 그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강하게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짜’ 그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를 여전히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도 우리의 의식 속에 오래전에 자리 잡은 이 두 가지 의심일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작인 롱테일 경제학(The Long Tail)에서 디지털 네트워크시대의 가치 및 시장변화의 트렌드를 간명하고 명쾌하게 제시하면서 기존 관념의 전복을 꽤했던 저자가 그 트렌드의또 하나의 핵심적 키워드인 공짜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시도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저자는 다소 도발적으로까지 느껴지는 “Free”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고 오랫동안 우리 내부에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편견과 의심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근거들을 하나하나 해체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의 어조는 여전히 경쾌하며 확신에 차있다. 혹자는 정보가 ‘공짜일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의 논리는 쉽게 거부하기 어렵다.
이 책은 공짜에 대한 보기 드문 본격적 탐색이다. 우리는 그와 함께 공짜의 역사와 심리를 더듬어 보고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는 각종 공짜 사례들을 분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 시대의 공짜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벼운 즐거움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공짜가 어느 누구에게는 기존의 사업모델을 증발시켜버리는 냉혹한 파괴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손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안심하게 만드는 소박한 경제적 동기로서의 공짜가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누구도 갖지 못했던 가장 큰 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임을 깨달을 것이다. ‘공짜일 수밖에 없다’는 비시장적인 전제가 최고의 기업가적 혁신을 요구하는 동인이라는 역설적인 주장이 가능한 이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은 공짜가 야기하는 가치의 이동과 공짜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가치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단서이다. 시장에서 재화 또는 서비스를 구입할 때 지불하는 화폐 수량으로서의 가격과 재화 또는 서비스의 유용성에 대한 주관적 또는 객관적 가중치로서의 가치를 구분하는 것은 그와 같은 단서를 포착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일 뿐이다. 가격이 상실될 경우 가치도 함께 상실된다든가 가치는 항상 시장가격을 전제로 한다는 오해는 이미 많은사례에서 극복된 바 있다.
오히려 우리가 탐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는 개개의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공짜인 개체들이 모여 새롭게 만들어 내는 총합으로서의 가치, 더 나아가 산술적총합을 뛰어 넘어 새롭게 이동되고 창조되는 가치가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공짜의 진정한 가치이다.
비용으로부터 자유와 심리적 장벽의 제거로 가능해진 수많은 긴 꼬리들의 자발적 참여가 만들어내는 기적을 주목해보라. 공짜의 풍요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희소한 가치들이 색 바랜 기존의 가치들을 대체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현금으로 측정 가능한 가치의 감소보다는 현금으로 측정 불가능한 가치의 증가가 무엇이고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보라. 공짜로서의 Free가 자유로서의 Free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그것이 우리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과감하게 실험해봐야 할 공짜에 대한 진정한 담론이다. 공짜의 가능성이 비즈니스 관점에서의 실용적 고민이라면 공짜가 야기하는 가치의 이동과 창조는 비로소 공짜가 진지한 담론의대상이 될 자격을 갖게 되는 본질적 고민이다.
비록 비즈니스는 아니지만 프리 콘텐츠(Free Contents)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의 보급을 위해 4년 넘게 자원 활동가로 참여해 온내게도 역시 공짜로서 더 나아가 자유로서의 “Free”의 가능성과 가치는 가장 중요한 화두이자 계속된 탐구의 대상이다. 법적․경제적 장벽을 넘어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지속적 생산,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자원 활동가들의 지속적 참여, 그리고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진정한 가치의 지속적 실현과 극대화는 계속 답을 구하고 있는 질문들이다. 물론 하나씩 하나씩 구체화 되고 있기는 하나 그에 대한 답은 여전히 희미하고유동적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그래도 그 변화의 한가운데 서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개혁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핑핑 돌고 활력이 넘친다는 저자의 표현대로 정신없이 진화해 나가는 그 현장에서 몸소 경험하고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운이 좋은 게 틀림없다.
이 정신없는 진화의 종착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질문에 대한 정답이 무엇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왕이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한 줄의 지혜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왕이 나에게 한 줄의 지혜를 요구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로 얻는 지혜는 없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과감하게 상상하고, 고통스러운 진화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실험한 자만이 진정한 지혜를 얻지 않겠는가. 이것이 이 책이 내게 슬그머니 알려준 한 줄짜리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