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쯤 이스라엘의 한 업체가 개발하였다는 장치가 온라인상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컴퓨터에 연결된 감지장치에 이용자의 팔을 대면 팔뼈를 스크린 하여 그 사람의 나이를 알아낸다는 것이다. 사람의 뼈에 나무의 나이테처럼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획기적인, 그러나 다소 엽기적인 이 장치가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이 장치는 스파이들이 쓰는 것도, 병원에서 쓰이는 것도 아니다. 단지 컴퓨터를 이용하는 이용자가 미성년자인지 감별하는 장치이다. 미성년자임이 확인되면 필터링 장치가 강제적으로 작동 되어 성인용 인터넷 사이트를 볼 수 없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용자의 나이를 확인하기 위한 많은 방법 – 주민등록번호 입력, 신용카드번호 입력, 전화확인 등등 – 이 고안되었지만 어느 것도 청소년들이 어른인척 접근하는 것을 완벽하게 막지 못했다. 이를 획기적으로 해결하려고 이 장치가 고안되었다고 그 기사는 밝히고 있었다. 그런 첨단 장치가 단지 청소년들로 하여금 유해 사이트 못 보게 하려고 고안되었다는 사실이 좀 허탈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답답하였기에 이런 장치까지 나왔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좀 과장되게 예상하면 이 장치가 대박을 터뜨려서 많은 가정에 보급된다고 해도 곧 “어른 뼈“를 판매하는 자들이 생겨 역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쭉 경험했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것도 음란물이나 포르노산업처럼 인터넷과 밀접하게, 그와 역사를 같이 하면서 커온 것은 없을 것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컴퓨터와 인터넷에 무지했던 소위 컴맹들이 그 장벽을 뛰어 넘고 네티즌의 대열에 끼게 된 데에 음란물이 많은 부분을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국민들에게 인터넷 교육 따로 할 필요 없이 연예인 동영상만 몇 번 유출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나왔을까. 아무튼 이처럼 포르노 분야가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한 투쟁사도 구구절절하다.

첫 번째 좌절 – CDA

인터넷상의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미 의회의 첫 번째 시도는 1996년의 CDA(Communication Decency Act)였다. 이 법은 상대방이 18세 이하의 청소년이라는 것을 알면서 인터넷상으로 음란(obscene) 또는 외설(indecent)한 메시지를 전송하거나 성적으로 노골적이고 혐오스러운 내용물(patently offensive material)을 보내는 것을 직접적으로 금지하는 것이었는데 연방대법원에 의하여 위헌으로 판단되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두 번째 좌절 – COPA

절치부심한 미 의회는 그 후속타로서 COPA(Children’s Online Protection Act)를 들고 나왔다. 이 법률은 CDA의 위헌판단을 교훈삼아 대상을 인터넷 중 ‘World Wide Web’에 의한 ‘상업적인 목적’을 위한 통신에 한정하고 제한의 대상을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물(material that is harmful to minors)로 특정하면서 Miller case에서 정의된 음란성 판단을 위한 세 가지 테스트와 보편적인 공동체 기준(contemporary community standard)을 적용하도록 하는 등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연방지방법원에 의하여 가처분이 발령되어 아예 처음부터 시행되지도 못하는 운명을 맞았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내용규제기준인 엄격심사(strict scrutiny)를 통과하지 못하였고 인터넷 필터링 등 최소한의 덜 제한적인 수단(narrowly tailored and the least restrictive means)에 의한 규제가 아니어서 헌법상 보호되는 성인의 표현의 자유마저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위 판결은 항소심과 대법원을 왔다 갔다 하였지만 결국 제1심의 가처분이 그대로 유지되어 시행이 되지 못한 채 묶이고 말았다.

극적인 승리 – CIPA

사법부로부터 2번이나 퇴짜를 맞은 의회는 전략을 수정한다. 즉 정보제공자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아니라 외설물에 대한 접근차단의 방법 즉 정보이용자를 인터넷 필터링에 의하여 음란물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이름하여 CIPA(Chidren’s Internet Protection Act)이다. CIPA는 공공도서관으로 하여금 아동포르노물(child pornographic material), 음란물(obscene material),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물(harmful to minors)에 대한 인터넷 접속을 거르거나 차단할 수 있는 기술을 채택하여 설치하지 않으면 공공도서관에 주어지는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우회적이고 기술적인 접근 방법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다시 위헌의 잣대를 적용하였다. 연방지방법원은 이 법도 결국 내용 규제로서 엄격심사기준을 통과해야 되는데, 필터링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차단대상 리스트의 내용이 이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내용물에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 없어 최소한의 규제라고 볼 수 없고, 좀 더 덜 제한적인 방법(less restrictive means)이 있다는 이유로 결국 위 규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여 무효라고 판시하였다. 미 의회의 3번에 걸친 시도가 모두 무위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대법원판사 9인 중 6인의 찬성으로 원심의 위 결정을 뒤집었다. 연방대법원은 교육과 문화부흥의 임무라는 도서관의 기능에 주목하여 도서관의 판단에 따라 인터넷 접속도 규제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위 법률이 헌법에 합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COPA의 부활과 구글

이로서 의회는 삼세번만에 겨우 그 뜻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CIPA는 이용자가 공공도서관에서 접속하는 경우에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 범위가 너무나 한정된 것이 문제였다. 이렇게 되자 미 의회는 사법부에 의해서 시행도 되기 전에 가처분으로 발이 묶여 버린 두 번째 법안인 COPA를 되살리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사법부가 COPA를 위헌으로 판단한 근거 중 하나는 그런 직접적인 규제방법 말고 인터넷 필터링 같은 좀 더 덜 제한적인 방법이 있다는 이유였다. 미 정부는 사법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인터넷 필터링이 부정확하고 실질적으로 오류가 많다는 점을 들고 나왔다.

얼마 전 구글이 이용자들의 검색기록의 제출을 요구한 법무부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한바탕 논란이 있었던 사건이 있었다. MSN과 AOL은 법무부의 요청을 따랐고 야후는 일부만 응한데 반해 구글은 그 요청을 거부하여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재판부는 한정된 범위의 데이터에 접근을 허용하되 이용자의 검색기록에 대해서는 법무부의 요청을 기각한 바 있다. 이처럼 법무부가 구글에 검색기록의 제출을 강하게 요구한 이유가 바로 위 COPA 때문이다. 구글로부터 얻은 정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유해 정보 차단에서 ‘인터넷 필터링’이 효율성이 없음을 반박하려 한 것이다. CIPA에서의 승리를 얻은 후 더 나아가 COPA에서의 역전을 노린 셈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CIPA 재판에서는 인터넷 필터링의 부정확성을 공격한 것은 오히려 법무부가 아니라 상대방이라는 점이다. 도서관에 설치된 필터링 소프트웨어가 부정확하니 CIPA는 과도한 규제를 가할 수 있어 위헌이다라는 주장을 한 것인데 이번에는 반대로 법무부가 그 점을 들고 나온 것이다. 앞으로 어떨게 진행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인터넷 필터링의 딜레마

CDA에서 COPA로, COPA에서 CIPA로, 다시 COPA로 이어지는 10년에 걸친 논쟁을 거쳐 왔던 미국의 경우보다 덜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현재는 음란물 일반에 대한 규율을 가하는 형법 등외에 인터넷과 관련되어 음란물을 규제하는 법으로는 청소년 유해매체물인 경우 이를 의무적으로 표시토록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피씨방의 경우 음란물 차단장치의 의무적 설치를 규정한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이 있지만 가장 예민한 규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전기통신사업법」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전기통신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통해 정보제공자를 통제하는 간접적인 규제방식을 택하고 있다. 즉 전기통신이용자가 음란물을 배포하는 등 ‘불법통신’을 한 경우 정보통신부장관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그 취급을 거부, 정지, 제한하도록 명할 수 있고 이를 사업자가 이행하지 아니하였을 경우에는 형사 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보제공자가 국내에 있는 경우에는 위 규정을 적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정보제공자가 해외에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전기통신사업자가 그 정보제공자의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정지시킬 수 없으므로 대신 그 사이트에 대한 국내이용자들의 접근을 차단하게 된다. 하지만 단지 사이트를 방문할 뿐이지 음란물을 제공한자가 아닌 이용자에 대하여 규제를 가하는 것, 즉 강제적인 인터넷 필터링 조치가 위 규정으로 가능하냐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새로운 접근 – 인터넷 접속권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2003년경 해외 음란사이트에 대한 대대적인 접속차단 조치에 대해서 이용자들이 국가와 ISP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건이다(1심 : 서울남부지방법원 2003가단183호, 항소심 : 같은 법원 2004나273호). 당시에도 많은 화제를 일으켰는데 원고들은 차단된 사이트들이 법이 허용하지 않는 음란사이트인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이용자들의 접근을 강제로 차단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헌법 제17조), 통신의 비밀(제18조), 언론의 자유(제21조), 행복추구권(제10조)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는 주장을 하였다.

1심 법원은, 피고들의 행위는 음란물의 국내 유통을 간접적으로 차단하려는 행위로서 적법하고 정당한 행위이며 이로 인하여 원고들의 헌법상 보호되는 어떠한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대한 항소심도 역시 위 조치는 필요최소한의 조치로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판시 내용에서 의미 있는 판단을 하였는데, “이용자들이 인터넷상의 다양한 사이트에 마음대로 접속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거나 또는 개인적인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권리는 원고들 주장과 같이 헌법규정에 의하여 당연히 인정되는 권리”고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였다면 일단은 그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아 원고들의 청구가 기각되었지만 인터넷 이용자들의 이른 바 “접속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이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나 당연하지 않은 것

사법부는 “당연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나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결정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사법부이다. 과연 인터넷과 음란물이 만나는 접점에서의 당연한 결정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위에서 본 미국의 치열했던 법적 투쟁이나 우리나라의 사례를 보면서 그렇게 당연한 것을 가지고 뭘 그리 복잡하게 다투었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한 논리가 다른 법익들과 겹치기 시작할 때 당연하였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사법부가 매번 처하게 되는, 그러나 되도록 적게 처하길 바라는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