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구와 기술의 등장에 따라 다양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그중에서 최근 IT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들은 새로운 기술의 부작용에 따른 것들이다. 이것은 기술이 공식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분쟁의 원인들과 법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는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3년 전 연수과정으로 미국에 머물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이른 아침에 연방판사를 따라 카운티 법조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변호사들과 현안에 대해서 이리저리 토론을 하다 그 당시 모 매체에서 발표한 ‘어처구니없는 올해의 평결 10선’이 화제가 되었다. 그 중 당당하게 1등을 차지했던 사건은 그 자리에 있은 대부분 사람들의 공감 – 역시 어처구니없다는 – 을 얻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한 남성이 캠핑카를 몰고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중 크루즈 컨트롤(미국의 경우에는 웬만한 차량에는 이 장치가 붙어있다. 특정 속도로 맞추어 놓으면 엑셀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계속 그 속도로 주행을 하도록 되어있는 장치로 고속도로에서 장거리 여행을 하는 데는 아주 편리한 장치이다)을 시속 60마일에 맞추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 이 운전자가 취한 행동은 운전석을 떠나 뒤편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한 것이다. 물론 자동차는 얼마 있지 않아 당연하게도 도로 밖으로 쳐 박혔고 운전자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 남성은 그 후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가 제기한 소송의 청구원인은, 자신은 크루즈 컨트롤이 핸들까지 알아서 작동시켜 자동으로 길을 따라 갈 줄 알았다는 것이고, 자동차 회사는 크루즈 컨트롤이 이와 같은 기능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매뉴얼에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책임이 있다는 정말 기막힌 이유였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이 사건의 배심원들이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실소를 금치 못하였는데 그때서야 미국에 와서 느꼈던 한 의문이 풀렸다. 미국에서 구입한 물건들 중 정말 사용하기 쉬운 간단한 물건이고 가격도 우리 돈으로 2, 3만원에 불과한데도 멋있는 모델이 친절한 설명과 함께 자세한 사용방법을 몸소 시연 해보이면서 이걸 다른 방법으로 쓰면 절대로 안됩니다라고 설명하는 비디오테이프가 딸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이 동네 사람들은 얼마나 멍청하길래 이렇게 구구 절절히 설명을 해줘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그게 다 저런 ‘어처구니없는’ 소송을 당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임을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따른 분쟁들

이 정도로 황당한 경우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도구나 기술의 등장에 따라 전에 없던 분쟁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분쟁의 양상은 크게 보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존의 기술과의 분쟁이다. 자동화 시스템의 등장에 따른 노동자들과의 분쟁, FM 방식과 AM 방식의 분쟁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새로운 기술의 불완전성에 따른 분쟁이다. 모든 새로운 기술은 거의 예외 없이 그 적응과정에 있어 여러 시행착오와 버그에 시달리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이것이 분쟁의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기술의 부작용에 따르는 분쟁이다. 사실 첫 번째 분쟁은 대체기술이나 보완기술 간의 갈등 속에서 결국 우수한 기술이 살아남거나 아니면 각자 살 길을 찾아 나름대로의 자리를 잡는 쪽으로 해결이 된다. 두 번째 분쟁도 시간이 약이 되든지 아니면 부지런한 패치의 보급으로 안정화 되든지 간에 대체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가게 된다. 문제는 세 번째 경우이다.

새로운 기술의 부작용은 당초 (공식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예기치 못한, 또는 예기치 못하였다고 주장되는 방향으로 새로운 기술이 이용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단순한 예가 접착제인 본드이다. 물건 붙이는데 사용하라고 만들어 냈더니 청소년들이 그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용도로 사용해 버리니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러한 부작용은 그 기술이 획기적이고, 위력이 크며, 뛰어난 것일수록 그 정도가 심한데, 여기다가 제3자의 행위가 개입되는 경우, 즉 제3자가 그 기술을 예기치 않은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관련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그 분쟁의 양상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 이때 실제 불법행위를 하는 제3자들이 일일이 단속하기에는 너무나 다수인 경우에는 그들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쉽지 않으므로 규제의 칼날은 원인을 제공한 기술로 향하게 된다. 결국 기술이 법의 판단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쟁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부작용을 일으킨 기술이, 그 부작용 때문에 사장시키기에는 너무나 아깝고 가치 있는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과감하게 기술 자체를 퇴출시키지도 못하면서, 직접 불법행위자들을 상대로 그 부작용을 제거하는 것도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그야말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된다. 과연 법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미국의 경우 그와 같은 제3자의 행위로 인한 새로운 기술의 부작용과 관련하여 기술이 법의 심판의 대상이 된 대표적인 예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case 중 하나는 이른바 Sony Case라고 불리는 Sony Corporation of America v. Universal City Studios, Inc. 사건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을 갖고 있던 스튜디오가 베타맥스 VCR의 제조자인 소니를 상대로 VCR의 이용자들이 방송을 녹화하여 저작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물은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 사건의 분쟁은 원래 저작권자가 아니라 광고주와 사이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당시 VCR의 혁신적인 기능은 time-shifting이라 하여 방송을 녹화하여 방송시간이 아닌 다른 시기에 시청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대게 광고를 제외하고 녹화하던지 아니면 시청 시 광고부분을 건너뛰게 되므로 방송을 통한 광고 효과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광고주들은 광고료의 지급을 줄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수익이 떨어진 방송사가 프로그램의 저작권자인 스튜디오에 대한 구매비용을 줄이게 되자, 최종적으로 손해를 입은 스튜디오들이 소송에 나선 것이다. 결국 애초에 사건의 발단이 된 것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제3자인 시청자들의 VCR을 이용한 저작권침해 행위에 대하여 소니가 어떠한 책임을 지는가로 쟁점이 바뀐 셈이다. 경위야 어떻게 되었던 이 사건은 기술 혁신의 장려라는 이념과 저작권의 보호라는 이념의 대충돌로서 과연 법이 이러한 충격을 어떻게 흡수할 것인지 그 결과가 주목되었다. 결과에 따라서는 단순한 특정 산업이 아니라 과학기술 전반에 상당한 영향이 미치게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처음 소가 제기 된지 8년이나 지난 1984년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꺼낸 카드(그것도 5:4로 의견이 팽팽하게 나뉜 끝에)는 ‘staple article of commerce doctrine’ 이었다. 이 이론은 원래 특허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떤 물건이 특허권을 침해하는 용도로만 쓰이는 경우에는 그 물건의 사용으로 침해의사가 추정된다는 것인데, 이는 역으로 말하면 어떤 물건이 상당부분 합법적인 용도로 쓰이는 주요물품(staple article)인 경우 이 물건이 특허권을 침해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고 이를 인식하고 있어도 제조자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소니가 저작권침해의 용도로 쓰일 수 있는 VCR을 제조하였더라도 이 기술이 상당부분 적법한 용도로도 쓰일 가능성(즉 공정이용에 해당하는 단순한 time-shifting)이 있으므로 소니가 그 침해의 가능성을 알고 있어도 책임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새로운 기술이 비록 부작용이 있더라도 인류에게 유용하다면 법은 그 기술을 보호하겠다는 것으로, 기술혁신에 대한 여유 공간을 남겨두어 과학 기술 분야의 불안감을 덜어준 것이다.

Sony 사건에서 정립된 이론은 기술의 혁신과 기존 가치와의 충돌이 따르는 경우에 두고두고 인용되어 왔는데 최근에 논쟁의 전면에 다시 등장하게 된 계기가 바로 P2P 프로그램을 둘러싼 분쟁이다. P2P 프로그램에 관한 논쟁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자세한 언급은 생략한다. P2P case는 Sony 사건 이래 그와 같은 가치들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된 사례로 역시 Sony 사건 못지않은 주목을 받았으며 계속 논쟁의 중심에 있어왔다. 비슷한 사안에서 하급심들의 결론이 서로 어긋나던 끝에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Grokster 케이스에서 (의외에도 만창일치로) P2P 프로그램의 제조, 배포 업체가 이용자들의 침해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을 두고 세간에서는 기술의 혁신이라는 가치에 대한 기존 질서의 승리로서 앞으로 과학기술 분야에 상당한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사실 이 사건의 결론을 앞두고 기술의 옹호자 측에서 제일 우려했던 것은 대법원이 Sony 사건에서 정립하였던 이론을 수정할 것인지 여부였다. 즉 VCR이 상당부분 적법한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있었던 것처럼 P2P 프로그램도 상당부분 적법한 용도로 쓰일 가능성, 즉 문화와 정보의 손쉽고 실효성 있는 교환체계라는 혁신적인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부작용은 Sony 케이스와 비교해서 너무나 심각하였으므로 그 책임을 묻기 위해서 그 이론을 수정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고뇌 끝에 이 케이스에서도 절묘한 선택을 하였으니, 새로이 침해유인책임의 원칙을 도입한 것이다. 즉 Sony 이론은 건드리지 않은 채, P2P 제품을 제공한 자가 단순한 인식을 넘어 저작권침해 행위를 조장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였다는 이유로 간접책임을 인정함으로써 그러한 적극적인 조치가 아닌 통상적인 행위에 대하여는 책임을 묻지 않을 여지를 만들어 역시 기술혁신을 위한 공간을 여전히 남겨둔 것이다.

국내에도 현재 P2P 프로그램인 소리바다 사건의 민사판결과 형사판결이 모두 대법원에 올라가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제2심의 민사판결과 형사판결이 결론을 달리하였다는 점이다. 과연 어떠한 결론이 언제 내려질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판관들의 고뇌에 찬 머리 짜내기(?)가 그때까지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가끔 하는 신세타령이긴 하지만, 어떨 때는 그냥 한쪽 입장만 신경 써도 되는 직업을 갖는 게 차라리 속편하겠다고 투덜거리곤 한다. 충돌되는 서로 다른 가치를 모두 고려하면서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고통 없이 단순한 일방의 옹호자로서 나선다면, 그게 정답이던 아니던 간에 상황 자체야 얼마나 명쾌한가. 명쾌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명쾌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처지. 그 위대한 지혜를 가졌다는 솔로몬은 과연 이 딱한 처지의 고뇌를 항상 너끈하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오늘도 또다시 신세타령 끝에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사족 : 여담으로 한 가지. 8년에 걸친 치열한 소송에도 불구하고 거뜬히 살아남은 베타맥스는 얼마 안 있어 별로 뛰어나지도 않고 덩치만 큰 VHS에 완패해 이 세상에서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가죽 대신 case(?)만을 남겼다.

http://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00000039141441